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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13 07:21
콩나물 추억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  

콩나물 추억

그 땐 그럴 수 밖엔 없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었을 것 같다. 나는 늘 엄마가 시키는대로 콩나물 100원어치(지금 가치론 1000원 정도)를 사러 중앙재래시장까지 가야 했다. 엄마는 제일 만만한 나에게 그 심부름을 시켰다. 내 위로 형도 있고 내 아래로 남동생 둘이나 있었지만 꼭 나보고 콩나물을 사오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쪽 팔리는 심부름이었다.

...

콩나물 사러 갈 땐 꼭 프라스틱으로 된 장바구니를 손에 들려주셨다. 왜 어린 아들의 체면을 생각해 주질 않았는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시장까지는 그당시 내 보통걸음으로 30분은 걸렸다. 당연히 왕복 한 시간 걸렸다. 그 길이 멀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서였다. 혹 동네 친구나 여자아이들을 만날까 봐서 조마조마 했다. 아, 우리 어머니는 왜 그걸 배려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는 어린 소년을 상상해보라. 시장에 가는 길은 두 개가 있었다. 큰 차들이 다니는 대로가 있었고 뒷 골목으로 질러가는 샛길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샛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샛길인 골목길로 구불구불 가다가 다른 샛길로 빠져 미로를 헤맨적이 많았다. 그 땐 속으로 눈물이 고였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고인이 되신 어머니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골목길 안쪽 큰 대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위기의 순간이 가끔 있었다. 그건 대문이 열려있을 때, 그 집의 무섭고 사납게 생긴 큰 개가 뛰쳐나와 짖을 때다. 나는 온 몸이 얼어붙어 앞으로 갈 수도 뒤돌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개가 심하게 짖는 소리와 함께 대문 안 쪽에서 "메리, 메리, 이리와, 짖지마" 하는 소리를 듣고 그 놈의 메리가 돌아서면 나는 힘있게 뛰어 위기를 벗어났었다. 이 일도 한 번도 엄마한테 말 안했다. 쪽 팔리기 싫어서.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여러 가게 앞을 지나가야 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양품점, 신발파는 가게, 채소가게, 철물점, 생선가게, 정육점 등이 쭉 늘어 서 있었다. 콩나물 파는 곳은 가게가 아니었다. 거기는 주로 채소나 생선을 땅바닥 좌판에 올려놓고 가게와 가게 사이 골목 가운데서 장사하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그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가면 콩나물을 길렀던 나무통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서 콩나물을 샀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갈 때마다 꼭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재우야, 니가 심부름 또 왔노? 옴마가 니를 보내는 건 니가 제일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기 때문에 아이가? 니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착해서 너그 옴마가 늘 칭찬한데이. 장바구니 이리 주봐라. 오늘도 내가 마이 주꾸마"
그러면서 100원어치 콩나물을 장바구니 가득 담아주었다. 나는 100원 동전을 아주머니 손에 드리고
쏜살같이 도망치듯 시장골목을 헤쳐 나왔다.

지금도 나는 콩나물국을 너무 좋아한다. 요즘엔 처음으로 내 손으로 콩나물국을 끓여 보았다. 스마트폰으로 레시피를 찾아 그대로 해보았더니 맛이 괜찮았다. 문제는 콩나물국 한 가지 끓이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자주 먹는 편이다. 지금은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비닐봉지에 든 콩나물을 매우 신사적으로 살 수 있어서 좋다. 콩나물국을 먹을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 콩나물사러 갔던 그 때 그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콩나물국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있다.

[잠언 20:11-12]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글쓴이 : 평택성결교회 정재우 원로목사